젤라렘에 대해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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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전에 젤라렘이나 유스에 대해서 다시 소개하는 글을 써볼까 하다가 게을러져서 -_- 못 했는데 오늘 코벤트리전을 앞두고 마침 젤라렘에 대한 가디언 기사가 떳길래 그냥 휙휙 번역 해봐욤.



출처:http://www.theguardian.com/football/2014/jan/24/gedion-zelalem-arsenal-next-fabregas




아스날의  넥스트 파브레가스? 원더 키드 제디온 젤라렘은 그의 발로써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


By-David Hytner (가디언 기자)






그는 무릎 부상을 입어 캐피탈 컵 대회에 결장했고 드디어 코벤트리전에서 그의 첫 데뷔전을 맞이할것이다.




제디온 젤라렘은 이제 겨우 16세이다. 그는 오는 금요일 밤 코벤트리전에 출전하기전 까지 아스날의 1군 경기에 나온 적이 없다. 그는 심지어 아직 프로 계약을 맺지도 않았다. 물론 이것은 그가 일요일날 17세가 될때 상황은 곧바로 바뀔 것이고 그는 프로 계약에 서명할 것이다. 그를 빠르게 무대에 올리려는 요구는 크고 명백하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이런 소문들이 바로 발생한 것일까? 잉글랜드의 미디어들은 언제나 이런 소문들을 쌓아올리고 파괴하고를 반복한다. 분명 이는 (어린 선수들에게) 잘못된 것이다.


나는 이러한 행위에는 반대하지만 그럼에도 젤라렘은 그 나이에 어울리지않는 뛰어난 미드필더 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라고 생각한다. 아스날은  세스크 파브레가스 이후 가장 뛰어난 장래성을 지닌 선수를 발굴했다고 믿고 있으며 이러한 그의 능력은 아르센 벵거가 처음 젤라렘을 보았던 순간 -클럽에서 트라이얼 할때-부터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아르센 벵거가 젤라렘을 처음으로 보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젤라렘의 아버지를 한쪽으로 불러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아들은 아스날에서 플레이하게 될꺼에요" 

아스날의 아카데미 또한 그를 맞을 준비를 했고 그는 16세 생일을 맞이하던 지난 1월에 아스날에 합류하게 되었다.


젤라렘의 명성은 이미 다국적으로 치닿고 있다. 그는 세개의 대륙의 세개의 나라에서 그를 지키고 그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 또한 맨유의 야누자이에 대한 사전 교섭과 마찬가지로 젤라렘의 경우에도 영주권의 절차를 밟아나간다면 잉글랜드 역시 그를 데려올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감독이 된 요르겐 클린스만은 시즌이 시작되자 개인적으로 그와 통화를 했고 그를 미국 대표가 되기를 설득했다. 젤라렘은 베를린에서 태어났고 현재 독일의 16세 레벨에서 뛰고 있다. 그는 또한 9살부터 16세가 될때까지 워싱턴에서 살았다. 그의 부모는 에디오피아인이며 에디오 피아 또한 그를 원하고 있다. 그를 설득하려는 클린스만의 시도는 약간은 아이러니함이 없지 않다. 클린스만은은 독일의 레전드 축구 선수이기 때문이다.


젤라렘은 수많은 코치들,스카우트들 그리고 에이전트들을 만나왔다. 그를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준 미국의 온리 레인저스 유스코치 Matt Pilkington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마치 이니에스타처럼 드리블하며 사비처럼 패스합니다. "지난 몇년 동안 저는 이러한 제 생각을 말하는 것에 대해서 조심스러웠지만 이제 말할 수 있겠네요."  "저는 이제 제가 이런 말을 한 것에 대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젤라렘은 프리시즌에서부터 두각을 드러냈고 아스날의 동아시아 투어에서 의심의 여지없이 스타중의 한 명이 되었다. 아스날의 4경기에서 그는 두번의 하프 경기를 치뤘다.  그는 자신의 리듬과 비젼으로 사람들을 경악시켰으며 인도네시아전에서 토마스 에이필드를 향해 준 아웃사이드 스루패스는 유튜브에서 히트쳤고 나고야 그림퍼스전에서의 테오 월콧을 향한 그의 어시스트는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가 준비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꺼에요" 라고 아스날의 미드필더인 잭 윌셔가 말한다. "그는 아무나 할 수 없는 패스의 길을 볼 수 있으며 볼을 가진 체로 매우 편안해 해요. 심지어 트레이닝에서 그와 상대하는건 악몽이에요. 그는 당신에게서 공을 떨어뜨리고 공을 잘 지켜낼 수 있어요. 그는 비록 그렇게 크지 않지만 튼튼해요. 그는 선수 사이를 종횡무진 날아다녀요. 기술적으로 그는 완성에 이르렀으며 그는 양발을 자유자제로 사용하면서 수많은 패스 길을 본답니다."


젤라렘의 시즌은 아직까진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는 리그가 시작되던 시기에 풀럼전과 토트넘전에서 명단에 들었지만 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9월 초에 무릎 부상을 당했고 이로 인해 두달간 결장하게 되었다. 이는 그가  출전했어야할 WBA전과 첼시전같은 칼링컵 대회에 결장하게 만들어 그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시기였다.


그러나 그의 피트니스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클럽의 아카데미 팀에서 8경기를 치뤘다. 그 와중에도 그는 1군팀에서 트레이닝을 받아왔다. 그는 마침내 그에게 기회가 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벵거는 ES에서의 코벤트리전에서 마침내 그를 호명했다. 그리고 그는 세스크의 발자취를 따라 17세 생일이 되기도 전에 데뷔전을 치루게 될 것이다. 시간은 확실히 그의 편이다.


젤라렘은 그 자신에 대해서 성숙한 태도를 가졌다. 이런 부분은 그의 다국적 국가에서의 경험들에서 만들어졌다. 그는 그의 아버지인 젤라렘 울디에스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갔고 그것은 자신에게 새로운 인생의 길을 열었다. 울디에스는 독일에서 1990년 그의 아내와 결혼했는데 그의 수많은 친구들이 워싱턴에 살았다. 이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에디오피아 공동체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젤라렘은 잠깐 미국에서 헤르타 베를린의 유스 프로그램을 경험했다. 그리고 올니 레인저스에 들어가기까지 많은 주니어 팀들을 거쳤다.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축구 자격증을 따고 대서양을 건너가 잉글랜드의 많은 팀들에서 트라이얼을 받았던 Rochdale 태생의 피킹턴은 그가 젤라렘을 처음 보았을때의 기억을 선명하게 떠올렸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그는 당시에 다른 팀에서 뛰고 있었고 풋살 경기가 열렸어요." 그는 Rochdale 특유의 톤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 저는 그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작은 에디오 피아 소년은 정말 대단했어요."


"풋살은 작은 코트에서 벌어지는 5-5 경기에요. 그래서 공간이 별로 없죠. 그러나 그에게는 엄청난 공간과 시간을 가진 것처럼 보였어요.작은 움직임이었지만 인상적이었죠. 또한 사람들은 그의 패스에 대해서 떠들기 시작했죠. 그러나 무엇보다 저는 정말 그런 드리블 능력을 한번도 본적이 없어요.그가 그날 했던 일은 정말 너무나 황홀했어요." 라고 그는 기분 좋은 과거를 추억했다.


피깅턴은 젤라렘 이야기의 중심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2010년 11월 올니 레인져스에 그를 데려다 놓았고 젤라렘은 15세이하 16세팀에서 뛰게 되었다. 기술의 발전과 테크닉을 승리보다 우선한 클럽의 철학은 그에게 도움을 주었고 젤라렘은 마침내 꽃을 피웠다.


피깅턴은 젤라렘에게 맞는 프로클럽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마침내 그는 대니 카비사윤과 만나게 되었다. 아스날의 북 아메리카 스카우터인 카비사윤은 한때 아스날의 선수였다. 그는 2011년 4월 젤라렘의 트레이닝과 플레이를 보기 위해 왔다. 그는 클럽의 다른이에게 해마다 열리는 유스 토너먼트인 달라스컵에서 젤라렘을 지켜보라고 추천했다.


당시 유스컵에서 아스날팀에서는 엠마뉴엘 프림퐁이 뛰고 있었고 클럽의 아카데미 감독으로 스티브 볼드가 있었으며 국제 파트너쉽 감독관인 스티브 모로우가 그와 함께 했다. 그들은 젤라렘을 지켜봤고 그를 매우 맘에 들어했다.


다른 클럽들도 마찬가지였다. 젤라렘과 함께 트레이닝을 했었던 스포르팅 지온의 치프 역시 그를 원했다. 그 클럽은 바르셀로나와 연결되어 있었고 젤라렘을 유혹해 바르셀로나에 이적료를 받고 넘길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스날이 먼저 그를 낚아챘다. 그들은 2011년 여름 젤라렘을 10일간 트레이닝에 초대했고 벵거는 젤라렘과 빨리 계약을 해야 했음을 알아챘다.


젤라렘이 가진 독일 국적이 아스날 아카데미로의 이동을 수월하게 해줬다. 16세가 되었고 그는 유럽 어디서 든지 뛸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특이한 상황들이 젤라렘의 미래의 국적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는 유년 시절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미국에서 보냈지만 미국인의 억양을 구사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 스스로는 자신을 미국인처럼 느꼈다. 그의 느긋한 태도와 꽤 자신감 있는 성격들은 타고난 미국인의 그것이었다. 만약 모든것이 동일한 상황이라면 그는 틀림없이 클린스만에게 미국 국적을 선택할 것이다라고 이야기 했을 것이다. 그들의 게임에 환상을 더할 수 있도록.


그러나 모든 상황이 공평한 것은 아니었다. 독일 이민법 섹션 25에 따르면 독일 시민권은 그가 다른 나라의 시민권을 신청하게 되면 사라진다. 다만 그가 EU의 국가들이나 스위스의 시민권이라면 복수의 시민권이 허용된다.


젤라렘은 미국의 여권의 권리를 주장하고 싶었지만 만약 그가 이를 고집한다면 독일 시민권을 잃어버리게 되고 또한 EU의 자격 또한 상실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잉글랜드에서 그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만약 그가 미국의 여권을 고집한다면 그는 워크 퍼밋을 신청해야 하고 이것은 그와 아스날을 복잡한 상황으로 이끌게 된다.


워크 퍼밋은 재능있는 Non-Eu 재능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이들을 위해 만들어 진 것이다. 이런 복잡한 상황들의 대한 조언을 얻기 위해 잉글랜드의 많은 에이전시들이 노력했지만 그들의 변호사들은 혼란에 빠뜨렸을 뿐이다. (이 부분은 해석이 애매해서 대충 넘어갔어요.) 그것은  아직까지 프리미어 리그 선수가 자신의 EU 국적을 포기한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들은 아스날로 하여금 여러가지 것들을 강구해야 하게 만들었다. 이 상황은 시간 낭비와 그에 따라는 위험 부담을 갖게 한다.


그렇기에 아마 벵거가 젤라렘이 어떤 선택을 해주길 원하는지를 상상하는건 그리 어렵지 않다. 미국 국적으로 유럽 클럽에서 지내는것이 어떤 것인지를 감안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스날의 대주주인 스탄 크론케와 클럽의 협상가인 딕 로우 그리고 사장인 이반 가지디스는 모두 미국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이들이다.


아스날은 그가 17세 생일을 맞이하자 마자 빨리 그와의 프로계약을 맺길 원한다. 지난 12개월 동안 수많은 매의 눈들이 그를 지켜보았고 호시탐탐 노려왔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 아스날이 바르샤의 유스 시스템에서 세스크를 빼온것과 마찬가지긴 하지만...


그러나 젤라렘은 아스날과 프로 계약을 할 것이다. 그는 아스날을 첫번째 장소로 골랐고 다시 이를 번복할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벵거는 빠르게 지난해에 그를 U-21팀으로 승격시켰다. 그는 젤라렘을 투어에도 데려갔고 1군 스쿼드에까지 올렸다. 아스날은 젤라렘이 14살이 됐을때부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들은 옳았고 성실했다. 그들은 젤라렘을 가족처럼 잘 대해주었다.


젤라렘은 성실하게 그의 자취들을 남겨 왔다. 이제 우리는 그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