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유형의 팬, 그리고 변화

etc

-하이버리에 몇일 전 올렸던 글이에요.-


네 전 사실 요즘은 조롱의 대상인 그 벵거의 '이상론'에 가치에 경도되어온 팬입니다. 그렇기에 아스날을 선택했고 그 이상이 내뱉는 실존적인 부분-즉 경기력-에서도 어느정도 만족을 했구요. 즉 누군가가 절 아스날 팬이라고 볼수도 있고 그냥 벵거의 팬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벵거의 가치자체에 끌린 팬입니다.

축구팀에 브랜드가 있다면 아마도 저에겐 우리팀엔 이러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키 큰 잘생긴 노년의 신사가 어린 선수들을 지휘하면서 고군 분투하는 이미지. 그리고 언제나 지든 이기든 '재미'만은 보장하는 팀. 그러나 사실 브랜드 이미지는 그 제품-여기선 축구클럽이겠죠-을 더 자세하게 알고나면 분명 깨지는 환상도 존재하게 됩니다. 

저같은 경우에 처음으로 도덕적인 충격을 받은 건 사실 경기 내적인 결과보단 소위 말하는 해적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 팀에 대해 품은 이상적 가치는  반칙이나 편법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거였고 실제 모습에서 그게 어긋난 첫번째 모습이었죠. 그러나 대게는 어떤 제품이나 브랜드에 대한 깊은 로얄티와 애정을 품게되면 그런 현실을 알게 되면 인지부조화에 시달리게 됩니다. 즉 현실을 감추기 위해 왜곡하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과정이죠.


한편 다시 돌아와 자급자족모델, 유망주 정책이 뿌리가 되어 최소한 제가 보기에 '재미있는' 축구를 한다라는게 이 팀에 대한 행복함이었습니다. 물론 그 재미있는 축구 뒤엔 어느정도의 성적도 당연히 전제 되어있구요. 제가 시즌 리뷰나 잠깐 틈틈이 찾아본 07-08들의 경기력은 정말 좋았어요. 물론 이때도 결과적으로 우승을 못했고 여전히 변함없이 축구내적으로 볼 때 수비력은 허접하고 선수 뎁쓰는 취약한 시즌이었을 꺼에요. 

그렇기에 실제 모양새는 두두의 부상이라는 악재 때문이라고 했지만 결국엔 우승을 못했을 팀이라고 보는 몇몇분들의 시선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타당하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만 우승을 할수 있는 '희망'을 주는것과 희망조차 없는 것의 차이겠죠.


 문제는 여기서 출발합니다. 실제 외적으로 봤을때 아스날은 주급 규모와 이적료만 보면 우승하기엔 어림도 없는 팀입니다. 그리고 팀의 클래스는 몇몇 월드 클래스들의 폼에 의존하구요. 그럼에도 제가 팬이 되어온 이후 -08-09시즌부터 제대로 봤으니- 한해 한해 조금 더 나아진 모습을 보였고 그렇게 작년의 모습은 적어도 저에겐 우승에 근접했군하 라는 희망을 보여준 시즌이었습니다. 

물론 축구내적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수비력은 취약한 팀이었고 벵거 체제에서 계속해서 지적해온 선수들의 뎁쓰 역시 여전히 개선 되지 않은 팀이었던건 분명합니다.-그러나 작년의 기억을 되돌아보면 많은 팬분들이 우리팀 뎁쓰가 좋아졌다라고 말한 적이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작년 스토크 시티전. 몇몇 주축선수들의 부상. 그리고 우승을 보너스로 취급 했던 버밍엄시티와의 결승전 이후 정말 비참한 모습을 우린 보게됩니다. 이 팀이 그전까지 4개 대회의 우승의 꿈을 보여주던 팀이 맞나 싶을 정도였죠. 끝없이 추락했고 계속 팬들은 소위 맨붕할 경기력이 계속되었죠. 그러나 전 그런 상황에서 여전히 기대감을 가졌습니다.

지금 이 모습은 단지 멘탈의 문제이다. 즉 지금보다 나아진 모습을 내년에 보여줄꺼라는 희망이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여름 이적 시장이 되었고 들리는 큰 소식은 누군가가 나간다라는 이야기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중에 팬 분들마져 나가라고 한 선수들도 있었지만요. 

시간이 흘렀고 전 적어도 감독님의 인터뷰-사실 저도 시즌중에 기자회견에서 하는 이야기는 전혀 믿지 않습니다-에서 이야기했던 두명의 월드클래스를 지키지 못하는 팀은 빅클럽이 아니다 라는 말 만은 철썩 같이 믿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잔인했죠. 그 두 명의 선수는 이적 시장 거의 끝까지 줄다리기 끝에 다 나가버렸고 팀은 작년의 희망이었던 윌셔까지 잃어버리며 그대로 붕괴하고 말았습니다. 그 시점에 다시 또 한번 제가 품고 있던 이상에 대한 인지부조화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희망'에 관한것, 그리고 벵거감독님이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았다 라는 개인적 실망감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여기서 현실에 대한 정당화를 시작했죠. 왜냐하면 이제 이 팀을 놓기엔 너무 이팀에 빠져들어 있었고 좋아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마지막날 세간에선 패닉바이라고 불렸던, 그리고 이성적으로 판단했을때 벵거의 변화인지 보드진의 결단인지 모를 이적 시장에서의 무브먼트가 이뤄졌습니다. 사실은 이 사건 역시 제가 가진 가치-어린 선수를 영입한다-를 부정하는 것들이었기에 최소한 우려의 목소리만은 갖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현실과 가치가 뒤섞여 버렸고 그 속에서 제가 좋아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조차 헷갈려갔던거 같습니다. 단지 눈앞의 불이 꺼진 것에 저 역시 만족해버린거죠. 물론 다른 팬분들은 그때의 무브먼트자체를 좋아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어쨌든 다른 팬분들이 이팀에 우승을 바라는것처럼 저 역시 이팀에 품고 있던 가치들이 하나하나 잘려나갔습니다. 그래서 사실 벵거가 짤리든 말든 해탈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죠. 지금 이 팀이 보여주는 모습은 제가 생각하던 방향성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게 인지 부조화인지 어떤 진 모르겠지만 전 이팀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던 거 같습니다. 이팀이 예전의 보링보링하던 아스날로 돌아가더라도 -물론 많은 분들이 현재의 모습에 대해 비판하는것처 럼 저역시 불평 불만을 늘어놓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팀을 그냥 좋아하게 될꺼 같습니다. 정말 축구라는 스포츠를 싫어하는 저를 이 팀으로 이끈 사람은 벵거였지만 이젠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건지도 모르겠어요.


예전에 이팀과는 약간은 다르지만 비슷한 식으로 좋아하던 팀이 있습니다. 전 94년의 엘지라는 팀에 반해서 야구를 좋아하게 됐었죠. 94년의 엘지라는 팀이 그랬어요. 젊고 잘생긴 유망주들이 재미있는 야구를 한다. 적어도 어린 저에게 그런 이미지였죠.그러나 현재 이 엘지라는 팀은 정말 못합니다. 아니 이 팀은 못하는것 정도가 아니죠. 감독은 매번 바뀌고 선수들은 성장이라는것을 모릅니다. 그리고 야구의 색깔도 없어졌어요. 허울좋은 브랜드였던 신바람 야구라는게 무엇을 의미했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을 정도로 말이죠. 그런데도 전 언제나 이팀을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바빠서 야구 경기를 못 볼때도 있고 7월달쯤 되면 언제나 자포자기 심정이 될때가 훨씬 많지만 말이죠. 

다시한번 돌아가 우리팀-아스날-이 엘지같은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아마 계속 좋아하게 될꺼에요. 팬이라는게 그렇게 쉽게 포기되지 않으니까요. 전 사실 감독이 바뀌더라도 현재 팀이 가지고 있는 색깔-물론 많은 분들이 그런게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만은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색깔이라는게 우리팀만 있는건 아니더라는건 압니다만. 

저야 축구에 대해서 제대로 몰랐으니 정말 멋진 모델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런 모델과 투자까지 적절하게 이루어진 바르샤같은 팀도 존재합니다. 아니 바르샤까지 가진 않더라도 자본에서 상대가 안되지만 멋지게 팀을 성장해가는 도르트문트같은 팀도 있구요. 전 두 팀을 비교적 뒤늦게 알았고 -물론 첫번째 팀은 아스날보다 먼저 알았지만- 아스날이 절 힘들게 할때마다 두 팀의 팬이나 되볼까 하고 경기들을 봤던적도 많습니다. 

객관적으로 판단한다면 우리보다 훨씬 재미있는 축구를 하는 팀일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고 하더라도 훨씬 많은 트로피와 좋은 결과를 내는 팀이라는건 확실한 팀들이죠. 근데 아무리 이 팀들의 경기를 봐도 아스날의 경기를 볼 때만큼 집중도 되지않고 재미도 없더라구요.


모르겠어요. 전 스스로를 굉장히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냥 이 팀의 축구경기가 아니면 재미가 없습니다. 앞에서 전 축구를 좋아하게 됐다 라고 했지만 사실은 틀린말이겠죠. 네 이제야 고백합니다. 전 '아스날의 축구'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아스날에 이상이 사라지고 7버풀 테크를 타더라도 이 팀을 사랑하게 될꺼 같아요. 다른 많은 분들처럼 말이죠. 제 마지막 소망이 있다면 벵거가 감독에서 경질 혹은 스스로 물러난다면 다른 팀 감독은 안했으면 하는 거에요. 예전엔 사실 상대적으로 이 팀자체보단 벵거의 이상에 대해서 더 가치를 둔 팬이었기때문에 벵거가 자신의 스쿼드를 온전히 가져갈 수 있고 자신이 추구하는 전략을 다 펼칠수 있는 팀으로 갔으면 했어요. 뭐 사실 레알로 간다고 하더라도 물론 현실과 이상은 다르기에 실제적인 타협은 있겠지만요.

근데 이젠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가 만약 물러난다면 그냥 축구라는 스포츠에서 은퇴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전 이 팀을 좋아하게 되었고 흔들리고 싶지 않아서요. 아무튼 너무 긴 글을 오랜만에 쓰다보니 참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네요. 여기서 사실 예전에 속도 많이 상하고 혼자 울분도 느끼기도 했는데 혼자서 원망한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괜히 미움을 사게 된 그분들께 죄송합니다.

사실 오늘 경기를 보고 맨붕이 와서 제일 처음 한 행동은 인터넷 브라우져에서 축구 관련 커뮤니티들을 삭제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블로그도 잠수를 타겠다라고 글을 썼구요. -한동안 안들어올 심산이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이버리를 삭제 할려고 마우스를 갖다 댔는데 마지막으로 그냥 한번 보자라는 심정으로 들어왔다가 이렇게 긴글을 남기게 되네요. 

저도 어쩔수 없나봐요. 아마 또 일요일이 되면 욕을 하고 화를 내면서 축구를 보게 되겠죠. 다시 한번 너무 긴글을 쓴 것에 죄송하게 생각하고 다들 그깟 공놀이 따윈 잠시 잊고 즐거운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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